전태흥의 문학 이야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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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흥의 문학 이야기-②이야기가 있는 음악 풍경-영원한 가객 김광석 <새장 속의 친구>

예천저널 | news@yc-j.kr

승인 2024.08.15

2024년, 창간 10년을 맞이한 예천저널은 예천의 ‘나이테’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들의 문학적인 감성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문학 이야기’라는 주제로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문학 이야기’의 첫출발은 전태흥 여행작가의 본지 기고 칼럼인 음악 관련 글부터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응원을 기대 합니다.

전태흥 작가는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김범일 대구시장 대변인과 조해녕 대구시장 대변인,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교통전문업체인 ㈜미래티엔씨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고향인 부산에서 도서관을 운영중입니다.

저서로는 ‘사람의 숲에서 보내는 편지’, ‘슬픈 영혼 사람의 길을 묻다’ 등이 있습니다.


▲ 전태흥 작가

1996년 1월 6일, 늦은 저녁 바람이 몹시 불었다. 버스를 타고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뉴스에서 그의 죽음을 알리는 보도가 나왔다. 자살이었다. 시대의 가객이라 불리던 그는 전깃줄에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다.

그날 대학부근 술집에서의 만남은 늦은 밤 내내 그의 이야기와 그의 노래로 채워졌다. 잔뜩 술에 취한 친구들과 밖으로 나온 시간, 어둠 속에 바람만이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87년의 함성이 사라지고 또 그렇게 우리 곁을 한 친구가 떠나간 날이었다. 진솔한 목소리로 1970년대 모던포크의 맥을 이었던 가객, “노찾사”와 “동물원”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노래한 시인, 그 친구는 김광석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날, 함께 그의 죽음을 슬퍼했던 친구들 중에 누구는 소식을 끊었고 또 누구는 정치판을 전전하고 또 누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누구는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오랜만에 모두가 다시 모였다.

첫 번째 약속 장소는 예전의 대학 근처였지만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방천시장에 있는 김광석 거리였다. 신천을 따라 그려진 그의 추억들은 우리의 이야기였다. 소외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꾸었던 젊은 날, 우리는 그가 마치 우리가 이루지 못한 세상을 노래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그토록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해서 그의 죽음은 김광석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 우리의 청춘이 사라진 날이었는지 모른다. 모두들 그의 얼굴이 그려진 신천을 따라 걸으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부른 노래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신천 변에 묻어 있었다. 낡은 손수레와 폐지를 묶은 짐자전거, 밤늦도록 빨래가 주인을 기다리며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긴 시간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온듯한 얼굴로 근처의 막걸리 집에 앉았다.

아무도 김광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옆자리에서는 그가 타살되었다는 화제가 한창이었지만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어떤 죽음이었는지를 따지기에는 우리는 이미 모두 지쳐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그 문제 제기가 가져올 파장이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는 그의 딸 서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분노를 잃어가고 있었다.

설령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일지라도 세상과 싸우는 법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익숙해진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누군가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이 유난히 맑아서/좁은 새장을 풀려난 새처럼 모두/낡은 기억은 이제는 몰아내고 싶어/잦은 슬픔은 이제는 모두 안녕/창백한 거리를 달려가고 싶어/묻어나지 않는 가슴속 말은 가득해도/어둔 조명에 얼굴을 적셔 두고서/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나의 친구여/잦은 슬픔은 이제는 모두 안녕/흐르는 시간에 씻긴 탓인지/퇴색한 추억은 너무 지쳐/파란 하늘위로 날아가 버린/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서/자유롭다며 부러워하던 친구여/비가 내린 여름 날 하늘에/드높게 걸친 무지개를 보며/부르던 함성은 전깃줄 위에 윙윙거리네.

그의 노래 <새장 속의 친구>였다. 평소에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친구도, 언제나 말이 없던 친구도, 모임 때면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던 친구도 모두 엉망이 되도록 취하고 있었다.

“난 이해해”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이란 책임감 때문에 세상을 잊었노라고 한숨을 쉬던 친구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사랑이란 것은 없어, 그건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야” “얄팍한 도덕 따윈 더 우스운 것이지. 아이들에게 못난 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하다고.” 그의 말에 힘없이 막걸리 병이 쓰러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병을 세우지 않았다. 방천시장의 밤은 그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취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날처럼 전깃줄이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한 하루였다. 그의 이름은 김광석이었다. 아니 그의 이름은 80년대였고 또 그의 이름은 우리들이었다.